| 이 곳 장판에 들어선 지도 벌써 엿새가 지났다.
이제 40이 갓 넘은 홍서방은 체력이 점점 달려옴을 느낀다.
조선땅은 팔아먹을 곳이 제법 크다는 도회지 서너곳말고는 없는데다, ‘무언가 좀 된다 싶으면’ 떼거지로 몰려다니는 장돌뱅이들이 때문에, 그나마 있던 거래마저도 접어두고 지구를 반바퀴나 돈 이역땅의 장판에 끼어든 홍서방이다.
보따리 짐을 지고 바다건너 올 적에는 단단히 마음을 먹고 왔지만, 장판은 역시 장판인지라 시끌시끌하지만, 만만치가 않다. 우선 아침에는 늙은이들이 쌍쌍이 몰려다닌다. 참, 늙그막한 나이에 노친네들이 세월삼아 돌아다니는 것이 보기도 좋거니와, 홍서방처럼 시도때도 없이 처자식을 떠나 객지생활하는 처지로서는 여간 부럽지가 않다. 하지만 역시 노인네는 노인네. 용돈이 궁하기는 게나 예나 별 차이가 없는 지, 좀처럼 쌈지돈을 여는 법이 없다. 설사 큰 맘을 먹었다하여도 고작 1푼, 2푼어치만 큰 생색을 내면서 사면, 기대했던 사람으로서는 맥이 빠지는 게 당연.
‘사람사는 곳이야 어딘들 다르랴’마는 먹거리는 확실히 차이가 나서 홍서방같이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도무지 끼니를 때우기가 마땅찮다. 떠날 때 가지고 온 고추장, 된장에 먹음직스럽게 밥이라도 척 비벼먹으면 좋겠건만, 행여나 냄새라도 나면 왔던 손님이 도로 나갈까봐 목간하기 직전인 한밤중말고는 먹지도 못한다. 노린내 풍기는 그네들의 음식을 ‘살기위하여 먹는다’는 비장한 심정으로 겨우 끼니라도 때우고 나면, 장판도 잠시 조용해진다. 그럼 젊은 장돌뱅이들은 저희끼리 삼삼오오, 선남선녀끼리 모여 노닥거리면서 저녁 술자리 약속이 정해지기도 한다. 아주 낫살이나 먹은 이들은 잠시 자리를 아랫 것들에게 넘겨놓고 약주 한잔에 낮잠을 청하기도 한다. 하지만 홍서방같은 타지에서 온 떠돌이들은 옆판 장돌뱅이로부터 한마디라도 더 듣고, 더 많이 팔기위하여 일부러 시꺼먼 숭늉을 사주면서 말이라도 붙여본다. 그럼 입이 근질근질한 연배들은 신이나서 이런저런 말을 끝없이 늘어놓는다. 때로는 재미있고, 유익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데, 연신 같이 웃어주면서 어서 끝나기만을 기다릴 때도 있다.
어쨋거나 한가한 오후를 지나고 밤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젊은 아이들이 몰려오고, 가족들이 몰려온다. 워낙이 조용했던 읍이라서 그런 지 꽤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장판이나마 보고자 두번도 오고, 세번도 온다. 하지만 그렇다고 올 때마다 물건을 사는 것도 아니다. 다음에, 다음에 하면서 장이 끝날 무렵에서야 겨우 한두푼어치나 산다. 그러면 겨우 대여섯냥어치나 팔까말까 하면 벌써 밤 10식경이 지나고, 장판은 불이 꺼진다. 재고정리에 돈정리까지 하고 씻을라치면 어느 새 새벽 한시가 훌쩍 넘어간다.
불쌍한 홍서방,
그저 어디가나 잠도 못자고, 돈도 못버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이제 걷기 시작한 막내둥이가 눈에 밟힌다.
어서 만나기 위하여 잠자리에 눕는다.
행복한 홍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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