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풍 루사의 위력은 산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뿌리째 뽑혀 하천을 뒹굴고 있는 나무들이 그 날의 엄청난 위력을 대신해 주고 있더군요.
등산로를 따라서도 태풍이 휩쓸고 간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고 군데군데 남아 있었지만
어찌 보면 그것은 우리 인간들에 의해 짓 밝혀 왔던 그 오욕의 시간에 비한다면 그 자신에게는 소중한 자정의 시간이 되었을지도 모르죠..
산과 바다를 구성한 물과 흙 그리고 지구를 감싸고 있는 공기
이들이 진정 스스로를 꿈틀거리며 이 자연을 살아 숨쉬게 하는
더 큰 생명체일 것이란 생각을 해 봅니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인간들의 무지와 자만을 비웃으며
그들만의 삶을 살아 가고 있겠지요
하늘은 이미 맑고 높은 청명한 가을 하늘로 바뀌어 있었고,.
계곡에선 돌 바닥을 헤치며 내려 오는 물소리가 맑고 차분하게 들려 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산이 더 없이 포근하게 다가 왔습니다.
일요일 아침 산 아래에서 시작된 작은 생각들을 접으며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북한산과는 달리 거리는 짧아도 꾸준한 오름 길로 되어 있는 탓에
한 주를 쉬었던 가슴은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가쁜 숨을 몰아 쉬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천축사 코스
마당바위에서 보이는 우이암과 그 능선 사이로 빼꼼히 자리 잡고 서 있는 북한산의 백운대
그리고 그 아래로 넓게 펼쳐진 파란 수풀이 장관을 이루고 있어
반드시 쉼 표를 찍고 가야 하는 곳
그곳이 바로 천축사 코스에서만 만날 수 있는 마당바위죠..
반대편으로는 수락산과 불암산이 보이는 그 곳에서
우린 펄떡이던 가슴을 물로 축이고 깊은 숨을 고른 후 마지막 정상을 향해 또 출발
.
자운봉과 만장봉,그리고 선운봉이 차례로 바라다 보이는 신선대에 올라 길게 한 숨을 고른 후
돌 틈을 비집고 올라 온 키 작은 나무 그늘 아래에 처진 몸을 뉘이면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해방감과 만족감으로 눈을 감게 되지요.
그리고 그 속에서 펼쳐 지는 또 다른 세상
구름이 흐르고 시간이 흐르고 삶과 인생이 흘러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음은
산을 오르는 우리들만의 것은 아닐런지요....
그렇게 한참을 누워 있던 내게 산우들의 모습이 보이더군요..
늦게 출발한 류차장은 부인의 오바페이스로 정상을 눈 앞에 두고 포기를 해야만 하는 상황.
그래서 우린 정상에서 조금 더 내려 온 곳에 자리를 펴고
늦은 성찬을 시작했습니다.
서울막걸리와 이동막걸리로 한잔씩 하고 소주로 입가심
족발을 메인으로 김치와 두부, 깻잎, 계란 등이 안주로 나오고
그 많은 성찬을 다 비우려 하다 보니 다른 때 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더군요.
서둘러 하산을 하기 시작한 우리는
아래 쪽 계곡에서 탁족을 끝으로
태풍으로 한 주를 건너 뛰었던 2주만의 산행을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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