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잘 가라!

종필이가 자기와 참 비슷하게 닮은 묘령의 아낙과  같이 차를 타고 간다.   종필이를 보러 1시간넘게 운전하면서 구기동 해장국으로 달려온 사람이다. 저런 얘들이 꼭 핸드폰에는 닭살오르는 ‘사랑어쩌고 저쩌고’하는 음악을 올려놓더라. 언제 만난지는 모르겠지만, 벌서 저렇게 닮았으면 나중에는 이난성 쌍동이라는 소리들을라.

처음에는 종기를 보러오는 사람인 줄 알았는 데, 그래서 종기가 그 자리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는 데, 해장국 집에서 종필이 옆에 앉는 순간에 아! 종기는 엑스트라였구나 하는 감이 팍 왔다. 그래도 종기는 좋단다. 스타 옆에 있으면 감이라도 떨어질까 하고 입을 벌리고 있는 모양이다. 종기야, 산이나 열심히 다녀.

산행기를 이렇게 시작하면 종필이도 같이 산을 쭈욱 탔을 거라고 오판하겠지만, 사실 종필이는 하산하는 입구에서 우리를 기다렸다가 같이 피로연을 한 거다. 그래도 북한산을 한 1m 정도 들어왔으니 산에 오기는 온거다. 게다가 그 1m들어온 산속에서 다리까지 삐었으니 대여섯시간씩 산에 갔다온 사람들보다 확실하게 표시는 냈다.

독바위역, 아침 9시.

지난 주만 해도 반팔에 반바지로 산에 갔는 데 이제는 긴팔. 긴 바지가 아니면 어색하게 된 날씨.

하나 둘 모이는 친구들. 직장이 정읍이라서 주말에만 서울에 온다는 승진이가 보인다. 한 달중 가족들하고 있을 시간, 서울에서 이런 저런 일들도 많을 텐데 빠짐없이 참석하는 승진이가 고맙다. 산악계의 거성, 오인이도 보이고.

경집이가 책을 한권준다. “역사로 읽는 한국불교”. 저자사인까지 해서. 음~, 책 내용은 차차 읽어보아야 겠지만, 훗날 경집이 친필사인이 들어가 있으니, 가보가 되겠구만. 잘 읽을게.

자, 슬슬 올라갈까!

오늘의 코스는 족두리봉-비봉-승가봉-문수봉-대남문-구기매표소

조금, 아주 조금 올랐다고 생각했는 데 벌써 비봉이란다.

진흥왕순수비가 있는 곳. 당연히 비봉까지 올라가야 하는 데 나, 종기, 철원이는 꾀부리느라 봉우리 아랫자락 아늑한 바위틈에서 바람을 피하면서 쉬었다. 첫 참석자인 덕영이를 비롯한 나머지는 봉우리까지 갔다 왔다. 그 사이에 철원이가 주는 사과를 깨물었지. 정말 시원하고 맛있더라. 역시 산에 오면 뭐든지 좋아.

시간보다는 땅으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나에 맞추어져 있는 우리들의 배꼽시계가 때르릉 울린다. 북한산을 제 집드나들 듯이 하는 오인이가 좋은 자리를 잡았다. 자료실 게시판에 보면 점심먹는 사진이 있는 데 뒤편으로는 일산.파주가 보이고, 앞으로는 서울시내가 한 눈에 다보인다. 서울을 둘러싼 전경을 보면서 친구들과 빙 둘러앉아 점심을 먹는 것도 맛있지만, 경집이의 조선 건국, 왕들의 이야기에 모두들 귀기울이면서 꽤 오랜 시간을 지냈다. 그 뭐시기 왕은 얼굴에 주름이 많다고 했는 데 역사의식이 시원찮다보니 잊었다. 궁금한 사람들은 ‘하니’한테 물어보거라. 그리고 왕릉근처는 명당이라서 땅값이 필히 오를 것이라니 아직 부동산 투자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새겨듣고. 경집이 말은 말하나 하나가 다 법어야.

산에 와서 또 하나의 깨우침을 준 녀석이 있구만. 고덕영!

나도 옛날에는 저렇게 살이 보기 좋았지, 하지만 지금 내 살들은 다 피난갔다. 5개월동안 6킬로 사라졌어. 왜 있잖아, 거시기 다람쥐 쳇바퀴돌듯이 도는 거. 전에는 그 밥도 나오지 않는 거 ‘왜 돈내고 해야하나?’고 했는 데, 허리가 아프다보니 도리없더라. 죽어라하고 그 위에서 걸었지. 혁띠끈을 줄이니 몸이 정말 가볍더라. 산도 전처럼 숨차지 않고.

그러니 덕영아! 니도 나 본맞아라. 얼굴마사지만 하지 말고. 텔레비에 나올려면 얼굴관리도 좋지만, 몸매 관리도 해야지.

신곡은 듣기 좋더라. 친구들은 다음카페에 가서 ‘고덕영’이나 ‘가요천사’를 치면 덕영이 카페가 나오니 한번들 들어봐.

석채야! 덕영이 노래를 여기에 올리는 방법은 없을까?

용필이 형님 노래만큼 좋다.

그런데 내려오는 동안에 잠시 경집이를 잃어버린 줄 알았다.

알고보니 산신령이 불러서 잠시 길을 벗어나 자연과 대화를 하고 온 모양이다.

역시 법사님은 대단해,

우리같은 사람은 산에 와도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는데 산신령마저 법사님의 기를 받고자 불러들이니, 경집이가 보통 사람은 아니야. 저런 친구랑 같이 산에 다니다보면 언젠가는 산신령이 나도 불러줄까?

그 때를 대비해서 꼭 휴지는 갖고 다녀야지.

경집이가 산신령과 대화하는 동안 일수는 그 작업의식이 발동했는데 우리가 너무 일찍 내려와서 분위기를 깬 모양이다. 일수아, 넌 그래도 기회가 많잖아. 아쉬워하지 말아.

어느 새 산행이 끝났구나 싶은 데 앞에서 많이 보던 얼굴이 있다. 종필이.

장시간 운동하고 목욕 후에 들이키는 맥주, 그리고 같이 고생했다하는 친구들의 캬~하는 소리. 이 맛에 친구들과 산에 간다니까. 잠시 후 들어오는 천엽, 간 그리고 해장국. 해장국 맛은 역시 여러 친구가 오자고 한 만큼 별미이다. 뜨거운 탕을 먹으면서 흔히 말하는 ‘시원하다’의 맛을 알려준다.

해장국을 맛있게 먹고 있는 데 후석이가 택시 운전사의 입을 빌려서 불교에 있던 불만을 경집이에게 말하니, 오늘의 명언이 나왔다.

‘연꽃은 진흙이 필요하다’

그래 세상은 더럽지만 연꽃은 피어난다. 그런데 난 연꽃일까, 진흙일까.

연꽃이 잔뜩 피어있는 곳이니, 설마 나만 연꽃이 아니지는 않겠지.

그래 나도 묻어가자. 연꽃으로.

어쨋거나 후석아 이제는 깨달았나?

너를 위하여 수많은 진흙탕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래서 네가 더 아름다운 것을.

그리고 네 덕분에 친구들이 주옥같은 법어들을 많이 들어서 즐거웠다는 것을.

그래서 네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친구들에게 법어보시를 했다는 것을.

‘종필아! 그 날 집에 바로 들어갔지? 그리고 다리는 괜찮냐?’

그 동안 쉬었던 다리도 요즘은 바쁘겠다. 무리하지 마라.

그리고 같이 다니면 하늘에 뜬 기분이겠지만 입은 다물고 다녀라. 벌레들어 갈라.

오늘따라 내가 종필이 걱정을 많이하네.

아무쪼록 두 사람 덕분에 국수먹을 일이 있기를 바란다.

해장국집에서 있는 2시간내내 웃느라고 얼굴 근육이 뻐근했다.

역시 산행도 뒷풀이가 있어야 되. 술과 안주로 살 빠질 일은 없지만, 엔돌핀이 팍팍 오른다.

이 엔돌핀이 어느 새 우리의 마약이 되어서 매달 둘째주에는 강성환.조희건 교주님의 부르심을 거역하지 못한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