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어린 시절

밥 수저 놓고 뛰어나가면

대문 앞 혼자 놀며 기다리던 친구

함께 놀던 친구

밥 먹으러 들어가면

기다리며 땅 위에 적었던

수많은 낙서

서로 놀다 다투고

다시 만나지 않겠다고 수없이 다짐하지만

등굣길 저만치

낮 익은 친구 옷자락이 보이면

미움은 봄눈 녹듯 사라지고

어깨동무 하며 신나는 개구쟁이가 된다.

뒷산 아카시아 마을을 덮을 때

입 안 가득 퍼지는 꽃의 향기

미루나무 꼭대기에 우는 매미

친구 어깨에 올라 손을 뻗어 보지만

매미는 높은 여름 하늘로 날아오르고

한낮의 소나기가 만든

고개 길 무지개

장에 간 아버지 마중 가듯 한달음에 달려가면

저 앞 산등성이로 감춰지는

무지개 꼬리

밤송이에 찔려 울면

친구가 넣어주던 생밤의 하얀 살결

함박눈 내리면

온 산 넘나들며 토끼를 쫒다 돌아와

젖은 신발 부뚜막에 올려놓고

꽁꽁 얼은 두 발 아랫목 이불 속에 넣고

함께 잠들던 친구.

손 내밀면 잡힐 듯이 가까이 있던

어린 시절 친구

세월이 우리 사이 천리 길로 갈라놓고

현실이 우리 마음 백리 길로 갈라놓아

저만치 떨어져 살고

고단한 인생길 절반을 지나

아내와 다투면 화를 풀 친구가 필요하고

자식 녀석 속 썩이면 한 잔 할 친구도 필요한데

그 시절, 그 친구

그리움 가득하나 만나지 못하고

잘 살고 있으려니 짐작하고

미루고 미룬 기약에

먼저 달려오는 불행한 소식

태어난 해가 같아

돌아갈 해도 같을 거라고 생각한

나도 미련하지만

세연(世緣) 다한 이 친구

무엇 때문에 빨리 갔나

이제 사는 곳 서로 달라 함께 할 수 없다면

다른 곳, 다른 친구와

즐겁게 지내려무나.

옆에 남은 친구

남은 인생길 걸어가며

가슴 깊은 곳에서 고독이 생겨나면

푸르른 하늘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뒷동산에서, 그리운 교정에서

까만 교복 먼지 묻도록 뛰어놀던

그 때를 생각하려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