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가을의 문턱에 들어서고 있다. 땅과 나무들이 휴식기를 맞아 자신의 색을 바꾸고 있다. 이들이 휴식을 끝내는 내년 봄 우리는 신록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전해주는 숲도 처음에는 아주 작은 씨앗에서 시작하였다. 이 씨앗이 넓게 퍼져 싹이 트고 나무가 되어 울창한 숲을 만들어낸 것이다. 우리 인간사도 마찬가지이다. 하늘을 찌를 것 같은 마천루의 시작도 작은 벽돌에서 시작하였다. 그런 작은 것이 쌓여 사람들이 경외의 눈으로 쳐다보는 역사가 된 것이다.

여러 친구들의 노력과 희생으로 졸업 30주년 행사가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다. 이 소식을 동기생에게 전하다보면 사는 모습이 제각각이어서 생각도 다양할 것이다. 그러나 이 다양함을 소통하고 조화시키는 것이 임원단의 책임일 것이다. 또한 그들이 가리킨 방향으로 참여하는 것이 동기생들의 역할이다. 참여도 꼭 정해진 것은 없다. 서신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온 것은 하나의 기준점이지 절대적인 지시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세상살이가 다소 괜찮은 몇몇 친구들이 모두 부담하는 것 역시 옳지 않다.

우리 주변에 있는 기념비적인 사물을 보면 대중들의 작은 참여로 시작한 것이 대부분이다. 한 예로 몇 해 전 낙산사가 소실되었을 때 당시 문화재청장이 이곳을 방문하여 낙산사의 역사성이 중요한 만큼 국비로 모두 복원하게다고 하였다. 언뜻 들으면 좋은 내용이다. 그러나 주지스님은 정중히 거절하며 불교인의 신앙심으로 복원하겠다고 하였다. 국가적인 지원은 사원 재건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신도와 사찰의 인연을 만들어주지 못한다. 또한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는 신도 한 사람이 내는 것도 신앙에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개개인의 작고 보잘 것 없는 액수를 모아 낙산사를 복원하려면 힘은 들지만 그 참여자의 작은 신앙은 마르지 않는 샘이 된다. 거기서 시작된 물이 강이 되고 바다를 만들어 내기 때문에 작은 참여는 역사를 만드는 초석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졸업 30주년에 참여하는 것은 회비의 액수가 중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졸업생 모두가 36기의 역사에 동참한다는 생각이 중요할 것이다. 그것은 학교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이 세상을 살아오고 살아갈 나 자신의 역사를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