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세속을 떠나는 속리산 산행

11월 13일 속리산 산행을 하였다. ‘俗離’ 그야말로 세속을 떠나 진리의 세계로 가는 뜻이니 그곳에 진리의 법이 머무는 法住寺가 있는 것은 자연스런 이치이다.

산명이 속리산이 된 것은 법주사를 창건한 진표율사가 이곳을 둘러볼 때 밭을 갈던 소가 대사의 높은 덕에 무릎을 꿇고 예를 표하자 농부 역시 축생이 소가 저렇게 진리를 아는데 인간으로서 어떻게 무의미하게 살 수 있는가를 반성하면서 세속을 떠나 진리의 길로 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니 남다른 사연임은 분명하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보면 수많은 사연을 접하게 된다. 좋은 일도 있고 궂은일도 있어 희로애락을 느낀다. 그런 가운데 시간이 지나 돌아온 길 뒤돌아보면 무엇인가 많이 모은 것 같은데 실상 헤아려보면 별로 없다. 가슴이 막막하니 살아온 세월이 무상하기도 하고, 이제 서서히 인생의 종착역을 향해 가는 것 같아 내심 두렵기도 하다.

이런 분위기에서 속리산 산행은 유쾌함을 준다. 지쳐있던 일상을 뒤로 하고 잠시나마 세상을 떠나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산 이름조차 속리산이니 그야말로 금상첨화 아닌가.

때늦은 단풍을 쳐다보며 오른 文藏臺. 글이 간직되어 있는 곳이란다. 예부터 글은 세상을 살아가는 진리이다. 그렇다면 이곳은 진리가 간직된 봉우리인데 어떤 진리가 있을까? 우리 선조들도 이곳 속리산에 오른 후 여기서 잠시 쉬었을 것이다. 막힌 곳 없는 이곳에서 살아온 이야기, 살아갈 이야기를 나누었으리라. 그러면서 어려움은 씻어내고, 즐거움은 기억하면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얻을 수 있었으니 문장대라 이름 한 것도 예사스럽지 않다. 나 역시 사방이 트인 그곳에서 가슴시린 푸른 하늘을 보고, 산에 오르면서 지나쳤던 단풍을 보니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됨을 느낄 수 있었다.

하산하여 죽심정에서 문장대 방향을 보니 저녁하늘이 붉게 물들어 간다. 잠시 상념에 잠겨 내 생애 이처럼 늦가을의 아름답고 오묘한 자연을 몇 번이나 볼 수 있을까 반문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