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컨디션 제로…
왠지 몸이 영 좋지 않았다.
지난 주 출장과 과음이 겹쳐진 이후 골골이다.
하루정도 쉬고 싶었지만 집사람은 지난 주 태백산 원정산행도 가지 못했고 다음 주는 구정이라 산행하기가 어려운 점을 감안한다면 내가 힘들다고 안 나간다는 것은 왠지 좀 찜찜하다.
그런 마음으로 알람소리에 찌푸등한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우긴 했지만..
물을 끓이고 산행준비를 서둘고 있는 집사람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 보고 있자니 차마 못 간다는 소리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준비를 해서 집을 나서려는 순간
집사람이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조금 달라진 듯한 둘째 녀석이
그 이른 시간에 일어나서는 따라 나서겠다고 난리다.
아무리 달래고 윽박 질러봐도 한 없이 서러운 표정으로 울기만 한다….
하는 수 없이 같이 가기로 하고 옷을 입히자
햐~ 고 녀석 세상의 행복은 지가 다 가진 듯한 표정으로 변해 버린다.
그게 애들인 모양이다.
아이녀석 때문에 약속시간보다 조금 늦었다.
그래도 다들 모인 시간이 그렇게 늦지는 않아 출발…
그런데 또 고민이 생겼다.
회원이 단 둘뿐인 동기산악회가 있는 날임에도
한수우 총무의 불참으로 나 홀로 산행이 된 줄 알고 우리 상계산악회와 함께 하게 되었지만
생각지도 않았던 성윤이(1반임)
산다람쥐라는 별명을 붙여줘도 손색이 없을 그 친구가 전화를 해서는 먼저 올라가고 있으란다.
동기산악회에서는 북한산 백운대를 오르기로 했지만(물론 이도 내가 정한 것이다) 같이 오를 사람이 없어 이미 도봉산으로 장소를 변경한 상태였기에 최종 목적지가 오봉임을 일러 주고는 그 녀석 주행속도면 충분히 따라 잡을 수 있으리라는 단순하고 나만 편리한 생각으로 일행과 그대로 출발…
역시 몸이 찌푸등한게 산행 들머리부터 나타난다.
게다가 아이 때문이라며 오봉에서 우이암으로 변경해 버렸다.
그러면 성윤이를 만나기가 어려운데…
아무래도 일행을 먼저 보내고 나는 아이와 천천히 그러다가 힘들면 집으로 먼저 가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 녀석은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벌써 꾀를 부린다.
조금 오르다 쉬고 또 오르다 쉬고
중간에 한번 정도는 돌아가기로 하고 발길을 돌리기도 했지만 왠지 내키지 않는다.
그래서 또 천천히 오른다.
역시나 작은 녀석에게 이 자연을 그리고 이 아름다운 산을 보여 줄 수 있다는 게 나로서도 무척이나 즐거운 일인 모양이다.
작은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아이가 무슨 소리야 하며 묻는다.
멀리 보이는 선운봉과 도봉산의 주봉들을 가르키며 아이녀석에게 그 느낌을 물어 본다.
점점 더 가까이 보이는 주봉들의 위용이 아이녀석을 즐겁게 할만도 한데 전혀 관심이 없다.
단지 정상이 가까워지면서 점점 더 작아지는 아파트단지들..
도윤아!! 저 아래 보이는 아파트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이야..
와…
역시 아이의 관심과 우리 어른들의 관심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산의 아름다움과 호연지기라는 그럴싸한 포장을 씌워가며 아이에게 산의 아름다움을 알게 해주기에는 너무 어린 모양이다.
그런데 역시 성윤이 녀석이 걱정이다.
휴대폰도 없는 녀석이고 보면 못 만날 가능성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괜한 짓 인줄 알면서도 소리 쳐 불러 본다.
“이..성..윤..”
몇번인가를 불러 보고 귀를 쫑깃거리며 대답을 기다렸지만 메아리조차도 돌아 오지 않는다.
배가 고프기 시작한다.
아이도 배가 고프다며 칭칭대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일행과 어떻게든 만나야 하는데…
전화를 해 보지만 받지도 않는다. 이름도 불러 보지만 알 수 없는 소리만이 들려 온다.
그렇게 하기를 2~30분여
전화가 통하고 소리로 근거리임을 확인한 우린
이윽고 만날 수 있었다.
다행히 아직 식전이란다…
하늘에선 눈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눈을 맞으며 먹기 시작한 늦은 아침과 태백산 막걸리 한잔
먹는 냄새를 맡고 이름 모를 작은 새 한두마리가 주변을 서성인다.
과자 부스러기를 잘게 쪼개 던져 주자 지들끼리 신호를 주고 받았음 인지 많은 새들이 몰려 든다.
사람을 그다지 경계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 녀석들도 이미 사람색채로 가득찬 도봉산에 동화된 것 같이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올라오는 길은 엄청난 인파로 가득 찼다.
내려가는 것이 조금은 부담스러운 지경이다.
그래도 처음 밝아 본 보문능선이기에 느낌이 나쁘지는 않았다.
매표소에 다다르자 성윤이로부터의 전화가 왔다.
벌써 오봉을 거쳐 만장봉으로 하여 천축사 부근이란다.
대단한 녀석….
만나고 싶었지만 시간차가 난다.
그래서 다음 산행에서는 꼭 만나자고 다짐하며 다음을 기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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