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젠가부터 고개를 들기 시작한 북한산 종주
5월을 시작하는 기나긴 연휴의 첫날을 D데이로 잡은 나는 그날이 오기까지 많은 설레임으로 종주를 준비하였었다.
인터넷에 올라 와 있는 각종 종주기를 토대로 북한산 14대문 종주와 우이동에서 시작하여 비봉으로 내려 서는 길이 종주 2가지를 놓고 많은 고심을 하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14대문 종주보다는 길이와 시간이 비교적 짧은 길이 종주를 하기로 하였다.
초파일이 얼마 남지 않음인지 우이동이 종착지인 버스 종점엔 등산객들은 그다지 보이지 않고 도선사로 오르는 신도들이 버스를 기다리며 긴 줄을 만들고 있었다.
불심으로 가득한 우리네 아주머니와 할머니들
그들이 소망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 진다면 우리네 세상도 조금은 더 살기 좋아 지리라 하는 작은 소망을 그들의 발길에 실어 보내고 싶어진다..
그런 작은 상념에 빠져 들 때쯤 강차장이 도착한다..
날은 무척이나 좋았다.
봄이라기 보다는 여름에 가까운 조금은 후덥지근한 날씨와 가을을 연상케 하는 파란 하늘과 그 속을 노닐고 있는 하얀 구름들은 우리의 종주를 기원해 주는 듯 했고 나 또한 그런 모든 좋은 징조를 내 가슴속에 꾸역꾸역 집어 넣고 싶었다.
07시 50분
우이동 6번버스 종점을 기점으로 힘차게 출발.
도선사로 오르는 아스팔트길
역시나 발로 전해 지는 느낌은 좋지 않았다.
게다가 가파른 등판 길을 오르며 내뿜는 차량들의 매연은 우리가 숨을 깊게 들이킬 때마다 우리의 폐부로 함께 들어 가고 있었기에 더욱 더 그랬을 것이다.
그런 아스팔트길을 빠져 나가는데만 해도 거반 30분 가까이 걸린 듯 했다.
도선사 매표소
반갑게 인사를 건네 주는 관리소 직원이 정겹다.
본격적인 등산길..
매번 오르는 길이기에 발놀림이 가볍다.
아직은 이른 아침인지 등산객들도 띄엄띄엄 보일 뿐 거칠 것이 없었다.
그러나 오름길엔 강차장이 조금 힘겨워 보인다.
보조를 맞추기 위해 하루재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북한산 경찰구조대와 수덕암을 지나 인수봉의 뿌리 끝 야영터를 지나면서 인수봉의 웅장함에 압도 당하는 기분으로 비탈길을 오른다.
땀이 뽀송뽀송 나기 시작한다.
몇 일전 비가 왔음인지 산위에서부터 흘러 내리고 있는 계곡물이 시원스럽다.
찰찰거리며 내려가는 달음질 소리가 흥겨워 허리를 숙여 그 계곡물의 찬 기운을 얼굴로 가득 느껴 본다.
그리고는 이내 백운산장이 나타난다.
산장 앞 의자와 탁자엔 벌써부터 막걸리로 더운 땀을 식혀 내려는 이들도 있었지만 우리는 우물 위까지 차 오른 맛 있는 우물물로 목을 축이고는 바로 출발..
위문
백운대는 빼기로 했다.
오랫동안 계획한 종주였지만 시간적인 제약이 있었다.
백운대만 해도 수십 번은 올랐었지만 그래도 빼 먹으려니 내 마음 속의 누군가가 왠지 섭섭하다며 원망하는 듯 했다.
백운대에서 빠져 나와 서쪽으로 뻗어 가는 염초봉과 원효봉이 위문에서 노적봉 안부로 내 달리는 우리에게 시원스런 모습으로 다가 온다.
암벽을 타는 듯한 기분으로 쇠난간을 잡고 느릿느릿 여유스레 가고 있는 10여명의 일행을 추월하며 내달렸다.
한 번은 오르고 싶은 노적봉을 옆으로 끼고 본격적인 능선산행이 시작된 것이다.
용암문과 백운대 대피소를 지나 동장대까지의 산 안쪽 길은 산 속의 아늑함이 느껴지는 곳이다.
그리고는 대동문
이곳까지는 늘 상 오르던 길이었기에 눈감고도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다정하고 친근하게만 느껴 왔던 곳이다.
이제부터는 내가 단 한번도 밣어 보지 못했던 곳이다.
성곽을 끼고 능선길이 계속 된다.
왼쪽으로 보이는 칼바위 능선이 우람차게 보이고 그 위에 서 있는 등산객들이 힘차 보인다.
칼바위 능선을 옆으로 치고 올라 온 길을 되돌아 보았다.
늘 우이동과 대동문쪽에서만 바라 보던 북한산의 모습이 새로이 빛나고 있었다.
만경대가 보이고 그 뒤로 백운대와 인수봉이 함꼐 맞닫아 힘차게 우뚝 쏟은 모습과 옆에서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 보고 있는 노적봉 그리고 그 곳에서부터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며 내달리고 있는 능선들이 성곽과 누각을 조연삼아 그리고 푸르른 나무들과 파란하늘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노랫소리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다시 내리막을 달려 작은 돌문의 보국문을 지나 다시 치고 오르자 한번도 보지 못했던 인수봉의 반대쪽이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오른쪽으로 나한봉과 나월봉 그리고 용출봉과 용혈봉 등이 북한산의 크고 웅장함을 대변하고 있었다.
내 발로 직접 밝아 보지 못했기에 그 봉우리들의 참모습은 아직 모르지만 그네들의 크고 작음 모두가 나름의 사연을 지니고 그 이름을 지니고 서 있으리라…
서서히 시장기가 돌기 시작했다.
하기사 아침도 안 먹고 올라 왔으니..
시계를 보니 10시 30분
조금만 더 가서 적당한 자리를 잡을 요량으로 목만 조금 축이고 또 출발
그렇게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는 사이에 우린 어느새 대성문에 다다랐다.
대성문에서 계속 성곽을 타고 오를 수도 있었지만 다시금 북한산의 속내를 까집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대성문에서 대남문으로 가는 길은 산 안쪽길을 돌아 오르기로 하고 조금은 여유로운 마음으로 발길을 옮기자 얼마 가지 않아 대남문이 우리를 반긴다.
다음엔 분명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반드시 14대문 종주를 하리라는 다짐을 하면서 문수봉의 위험한 길로 접어 들었다.
안전한 길로 돌아 가라는 안내 표지판도 있었지만 왠지 재미가 없을 것도 갔고 문수봉을 옆으로 지나쳐야 한다는 것은 못내 억울한 생각이 들어 우린 그대로 밀어 부치기로 한 것이다
성곽을 따라 조심스레 올랐지만 문수봉까지는 위험한 곳이라곤 없었다. 그리고 문수봉 옆의 길목 바위 위에서 시원한 바람과 함께 휘날리고 있는 태극기를 지나 문수봉 아래에서 옹기종기 장난치듯 널려 있는 바위군들 중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은 우린 뒤늦은 아침을 시작했다.
서울막걸리와 지난번 쌍용산악회때 꼬부쳐 두었던 작은 소주 한병
산에서 둘이서 먹기엔 조금 많은 듯 싶었지만 바위 아래로 펼쳐진 서울의 서쪽에 위치한 북한산의 풍광은 술이 술이 아닌 시원한 신선주 아니 장로불생주 정도로 여겨지고 있었다.
집에서 투덜대긴 했지만 그래도 정성스레 싸 준 찰밥과 김 그리고 오이김치와 컵라면 배가 그득그득 차 오른다.
그래도 새로운 북한산을 알게 된 그 희열에는 미치지 못할께다.
그렇게 먹으며, 쉬며 30여분의 긴 시간을 보내는 동안 이마를 가득 적셨던 땀방울은 시원한 산바람에 어느새 뽀송뽀송 말라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얼마 남지 않았다.
조금만 더 가면 승가봉과 사모바위 그리고 비봉이다.
이제부터는 등산객들이 엄청나게 많다.
그러나 문수봉을 내려 가는 길이 장난이 아니다.
분명 위험한 길이라고 써놓은 글귀가 떠올려지는 자칫 잘못하다간 목숨도 잃을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하물며 술까지 마신 후니 더 무슨 말을 하겠는가.
자연히 다리에 힘이 들어 간다.
손을 넣어 잡을 수 있는 바위틈에 의지하며 수직에 가까운 절벽을 내려가는 일이 이제껏 다녀 본 산들과 틀렸다.
아래에서 올라 오는 것은 그래도 나은 편이지만 내려가는 것은 그렇지 못했다.
조심해야지 속으로 되내이며…
그렇게 조심조심 내려 오니 그 뒤로는 평탄한 길이 계속되고 수많은 인파로 등산로는 몸살을 앓고 있었다.
그리고는 승가봉을 지나 비봉
비봉을 불과 300미터 앞두고 우린 또 한번 미련을 남겨야만 했다.
예정된 시간을 맞추기 위해선 아무래도 쉬는 시간이 너무 많았던 듯….
아!!!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승가사로 해서 계곡길을 따라 하산길을 재촉하였다.
철철 넘치며 흐르는 계곡물에 더운 몸을 풍덩 던지고 싶었지만 도봉산이나 수락산과는 달리 계곡으로 들어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줄을 쳐 놓았다.
탁족만이라도…
그마저도 자연을 지켜야지 하는 그래도 작은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참고 참고 내림길을 계속했다.
그래서 도착한 곳이 구기매표소
계곡을 따라 지어진 멋진 집들이 눈에 들어 온다.
그리고 길가에 늘어 서 있는 음식점들과 등산용품 판매점 그리고 이것저것을 파는 자판까지..
구기매표소를 지난 시간이 13시경이니 우이동 버스종점부터 5시간 10분 정도가 걸린 셈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뜀박질을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쉬엄쉬엄 느림보를 하며 지나 온 길들이 머리 속을 따라 다시금 선명히 지나쳐 간다.
그렇게 해 보고 싶던 종주였지만
역시나 많은 느낌과 황홀한 세계를 안겨 준 의미있는 산행이었다.
보는 각도와 위치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하고 있는 우리의 산과 자연
너무나 당연한 진리였지만 이제껏 내가 보고 있던 그 것만이 전부인양 그래왔던 것은 아닌지..
그리고 내겐 또 하나의 목표가 생겼다.
북한산 14대문 종주는 물론이거니와 북한산과 도봉산 그리고 사패산을 잊는 길이 종주….
그리고 난 내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더 알게 되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곁에 이렇게 훌륭하고 멋진 산들이 있어 언제 어느 때 찾아도 이렇게 반겨 주는 이가 있으니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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