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제가 꼭 가보리라 하는 마음속 다짐을 해오던 내게 기회가 찾아 왔다.
광복절 휴일이 낀 3일 연휴
휴가가 끝나고 또 다시 찾아 온 절호의 기회를 그냥 그렇게 보낼 수 는 없었다.
강차장네와 함께 가기로 약속하고 14일 오전에 산악회에 신청을 한 후
출발시간까지의 기다림은 모처럼 느낄 수 있었던 초등학생의 소풍전날의 기분 바로 그런 거였다.
동대문 시장 주차장
예정된 시각인 14일 밤 10시
45명을 태운 관광버스는 서울의 네온을 뒤로 하고 어둠속으로 천천히 들어 가고 있었다.
몇몇씩 짝은 지어 온 꾼들이 많은지 조금은 어수선하고 통로에 내려 놓은 배낭짐으로 조금은 불편했지만 설악을 향해 가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린 그런 불편쯤은 참을 수 있었다.
그렇게 달려 도착한 한계령 휴게소엔 검은 어둠 속에 잠들어 있는 설악이 우릴 반기고 있었다.
배낭의 어깨끈을 단단히 조여 맨 후 우린 그토록 가슴저려 왔던 설악의 밤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 갇혀 있던 등산로는 우리들의 발길을 열어 주는 손전등의 불빛으로 튀어 나와 끝없이 이어지고 오를수록 점점 더 어둠 속에 갇혀 버리는 설악의 모습은 어스름히 그 신비감을 더해 가고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새벽의 설악을 찾아 길을 오르고 있었다.
한계령 갈림길을 지나 어딘지 모를 어느 고개 마루에서 헐떡거리는 숨을 물로 고르며 잠깐의 휴식을 취하고 앉아 있는 내게 곳곳에서 비쳐지는 작은 불빛은 그 속 어디쯤에서 나 또한 숨쉬고 있음을 알게 해 주고 있었다.
그렇게 오르고 또 얼마를 올랐을까
시간을 잊어 버린 내게 동쪽 하늘 땅끝에서부터 서서히 밀려 오고 있는 여명만이 언제쯤인가를 가늠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새벽을 깨우고 여명에 이어 나타날 해돋이를 기다리던 내게 나타난 것은 하얀 아침빛이었다.
안개 속에 잃어 버린 해돋이에 대한 진한 아쉬움이 발걸음을 무겁게 했지만 또 다음이 있기에 훌훌 털어 버리며 좀 더 편안한 마음과 자세로 오름길을 계속 하고 있었다.
능선을 타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숨쉬기도 훨 편해졌지만 설악은 내게 그렇게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너덜거리는 바위 길을 지나자 끝청이 안내표지판과 함께 우릴 반기고 있었다.
이제 조금씩 교차하는 꾼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어디서 시작했는지 모를 꾼들이지만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대청으로의 길을 향해 발길을 재촉한다.
그렇게 또 오르자 중청 대피소가 눈앞에 들어 왔다.
여름날씨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세찬 바람과 아침 안개비는 겨울을 성큼 옮겨 온 듯한 느낌이었지만 대피소 안은 수많은 사람들의 열기로 너무나 아늑하기만 했다.
간단히 컵라면과 행동식 등으로 아침을 떄우고 잠깐의 휴식을 취한 후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대청이 바로 저긴데 바로 하산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아쉬움이 다가 왔다.
그래서 다소 힘들어 보이는 강차장네 부인만을 대피소에 남겨 두고 나머지 셋은 대청을 가슴 가득히 품기 위해 발길을 대청으로 향했다.
대청봉 1708미터
설악의 제 1봉
날씨가 좋지 않아 주변을 조망할 수 없었던 것이 커다란 아쉬움이었지만 이미 내 마음 속엔 대청을 그리고 설악을 가슴속 깊이 담아 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단지, 사람들의 인위적인 가꿈이 있어 보이는 정상 주변이 마음을 편치 않게 하고 있을 뿐이었다.
사진으로 설악 속에 우리의 모습을 담고 싶었지만 야속한 카메라는 밧데리의 수명을 다해 그저 우리의 눈 속에 영원히 담을 수 밖에 없었다..
이제 하산길이다.
다시 중청으로 소청으로 회운각 산장으로 청불동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공룡능선을 타고 싶었지만 초행길에 다소 무리라는 생각이 앞서 이미 포기한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아쉬움은 우리를 또 다른 설악을 계획하도록 만들고 있었다.
그렇게 우린 힘들었지만 즐겁고 흥분된 산행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런 우리에게 뜻하지 않았던 암초가 나타난 것은 소청 부근이었을께다.
집사람의 신발에 문제가 있었던건지 아니면 바위에 부딪혀 그랬던 것인지는 확실치 않았지만 발톱이 아파서 제대로 걷지를 못하고 있었다.
절룩거리는 발걸음이 우리 모두를 잡고 있었다.
도와주기도 어려운 상황
그 앞에 공룡의 멋진 모습이 우리들 눈 속으로 들어 왔다.
탄성을 지르고 싶었지만 아내의 아픈 발걸음이 숨소리조차 조심스럽게 만들었고 점점 더 아픔이 더해 가는 듯한 표정 발걸음이 부자연스러워 지면서 다리마저 아퍼 오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회운각 산장까지만 더 가자며 길을 재촉해 보지만 그곳이라고 뭐 별 다른 수가 있을까
앞으로 정상적으로 내려가도 4시간 정도는 더 내려가야 하는 곳인데 걱정이 앞선다.
산악회의 가이드와 같은 버스를 타고 온 일행이 함께 해 주고 있었지만 역시 안타까움뿐이었다.
억지로 억지로 힘들게 도착한 회운각
그곳에서 우린 첫번째 구세주를 만날 수 있었다.
일행 중 한명이 샌달형 등산화를 여벌로 가져왔던 것이다.
신발이 조금 크긴 했지만 문제는 되지 않았다.
발톱 사정은 나아졌지만 이제는 무릎과 다리가 문제였다.
절뚝거리는 발걸음을 보면서 조금 더 조금 더 사정을 해보지만 사정은 나아지지 않고 점점 더 힘들어져만 갔던 것이다.
수시로 쉬다가 거북이 걸음에 맞추어 내려가지만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지나던 꾼들이 에어파스를 꺼내 뿌려주고 물파스를 꺼내 발라준다.
그러나 이내 효과는 없어지고 또다시 힘든 발걸음.
비선대 3.5키로의 안내판이 보인다.
이대로는 무리였다.
이제 방법은 업고 내려 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을 듯 했다.
그러나 험한 너덜길이 계속되는 곳에서 업고 내려가는 것 또한 무리였다.
그래도 조금씩 업고 또 조금씩 걷기를 반복하고 있던 중
어떤 산꾼이 우리네 모양새를 보고는 수지침으로 무릎을 사정없이 찔러댔다.
피가 사정없이 흐르고 있었지만 그다지 차이가 없어 보였다.
그 위에 일행 중 또 한 분이 맨소래담을 둠뿍 둠뿍 발라서 마사지를 해 준다.
정말로 모두가 고마운 분들이었다.
조금 나아졌을까…?
조금씩 걸어 보지만 이내 주저 않아버린다.
그리고는 또 다른 구세주가 배낭에서 주저 없이 압축밴드를 꺼내 주고 가버린다.
아마도 압축밴드가 가장 효과적이었던 것 같다.
발걸음이 조금은 좋아진 듯 하지만 아직도 남은 길은 비선대까지도 1키로 이상이 남아 있었다.
이젠 나뿐만 아니라 강차장까지 업기를 자청하고 나선다.
그런데 역시 강차장의 체력이 나보단 훨 좋아보였다.
업고 내려 가는 모양새가 훨씬 안정되게 보였다.
아마도 나보다 더 많이 업고 내려 왔을게다
그렇게 힘든 여정이었다.
서울출발시간이 오후 3시였기에 우리딴에는 조금 일찍 내려오면 대포항에서 오징어회에 소주 한잔까지도 할 수 있을꺼란 생각으로 서둘렀지만 이젠 그딴 생각은 하나의 허황된 꿈이 되어 버렸고 출발시간 전까지 도착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우리의 걱정거리로 다가 왔을 뿐이다.
.
다행히 압축밴드 탓일까 비선대를 내려와 조금은 평탄해 길에서 아내의 사투가 시작되었다.
이를 악물고 걸어 가는 그 모습이 안스러웠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누군가 119를 불러 도움을 청하라 했지만 왠지 그렇게 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업고 내려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을 테니 말이다.
버스에 도착한 시간이 3시 10분
9시간이면 충분했을 거리를 3시간이나 더 걸린 셈이었다.
이번 산행에선 너무나도 많은 것을 얻었다.
이제껏 다니던 북한산과 도봉산 그리고 수락산
물론 가끔씩 소백산과 치악산과 같이 긴 산행도 해 왔지만 설악산은 그들과 근본적으로 달랐다.
그런 작은 산과 설악의 큰 산
좀 더 많은 준비가 있어야겠다는 것도 얻은 소득 중 하나였지만 큰 산엔 커다란 마음을 가진 진정한 산꾼들이 많았고 그들의 작은 배려와 마음 씀씀이는 내게 가슴을 더욱 넓고 넉넉히 가지도록 가르치고 있었다.
그리고 내겐 또 다른 목표가 생겼다.
설악의 그 큰 산을 내 가슴과 눈 속에 더욱 더 많이 집어 넣고 싶어졌다.
설악 곳곳을 내 품속에 가득 가득 집어 넣을수록 내 가슴 또한 한없이 넓어질 것 같은 생각이 지금 나의 작은 가슴 속에서 모락모락 피어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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