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돌뱅이의 미래
장돌뱅이는 타고난 역마살이 없이는 하기 힘든 일이지만, 그렇다고 남한테 내세울만한 일도 못된다. 언제나 배가 고픈 일이지. 그래서 홍서방은 부지런히 움직인다. 그래야만 처자식을 배고픔으로부터 벗어나게 한다. 가진 것도 재주도 없는 홍서방이 배운 것이라야 이 장터에서 물건을 팔고, 남은 푼량으로 다시 이 고장의 특산물을 사서 저 장터로 가서 파는 일이라, 다른 일을 벌리고 싶어도 할 도리가 없다. 그나마 자신의 처지를 잘아는 홍서방은 남보다 빠르게 움직여서 한양장과 대구장을 생쥐가 쥐구멍을 드나들 듯이 오가며, 근근히 먹고 살 수있던 것은 한양사람이 대구를 잘 모르는 데다, 홍서방처럼 한양.대구를 밤사이에 하루 밤에 오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비록 홍서방의 물건이 다른 장돌뱅이보다 비싼 줄은 알지만, 남들보다 2-3일은 빠르고 물건이 실하기 때문에 사들였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한양 천리라고 대구에서 상경하려면 무려 한달이나 걸렸다. 그러니 집안에 뭔일이 나도 소식을 전하기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 거리를 홍서방은 밤사이 달리면서 물건의 값어치를 올렸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홍서방의 생활도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고속철도가 나고 인터넷이 생기자 사람들은 더 좋은 물건을 더 싸게 살 수있게 되었고, 거기에 비례하여 사람들은 점점 더 똑똑해졌다. 홍서방이 하던 중간상의 역할은 점점 조그라들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배고픔 때문에 하나 밖에 없는 몸뚱아리를 혹사시켜가면서, 밤을 낮삼아 뛰었는 데 이제는 그나마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두려움이 더해졌다. 평생 배운 거라고는 이 짓 밖에는 없는 데...... 사람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일은 그만하고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일을 하라고 하지만, 그 사람들 조차도 자신이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고 하는 소리.
난 변하고 싶지 않다. 이대로가 좋다. 몸은 고달프지만, 장터에서 들려오는 객상들의 고함소리, 엿장수의 가위소리, 부추전에 막걸리를 목에 넘기고 ‘캬아’하는 소리들. 그 소리를 들어가며 이제껏 살아왔는 데, 이제와서 어떻게 변하란 말인가!
그 살가운 소리를 제쳐두고 컴퓨터에서 그림이나 올려놓고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주는 차가운 이메일을 기다리면서 항상 긴장해야 한다는 말인가. 내가 살아온 길은 그게 아니다. 그럼 그동안 정들었던 추풍령의 처녀 귀신을 앞으로는 보지 못한다는 말인가. 뭐시라고. 그녀도 얼마전에 때깔좋게 먹다죽은 뚱보귀신과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연하의 귀신과 재혼했다고. 귀신도 변하는 세상에 홍서방만 못변한다고 몸부림치고 있다고.
그래, 변해야 한다. 변해야 한다. 그러나 두렵다.
배고파서 움직여야 하고, 다가올 앞날이 두려워서 움직여야 한다.
불쌍한 홍서방이여, 파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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