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돌뱅이를 한다는 것
오늘, 또 하나의 장이 끝났다. 언제나 예정된 시작이고, 시작 때부터 예정된 끝이지만, 매번 끝날 때마다 인생의 한 막이 내리는 기분이다. 마지막 반식경을 기다리지 못한 장돌뱅이들이 서둘러서 짐을 쌓아서는 눈인사도 없이 사라져 가버린다. 사흘 동안 한 장에서 지냈다는 사람들인지 의식조차도 없다.
그런 사람들이 떠난 장바닥을 둘러본 홍서방은 담배 한 대를 적적하게 피워문다. 장돌뱅이들이 떠난 자리를 정리하는 사람들도 그 흔적을 없애기 위하여 바삐 움직이는 모습에 새삼 홍서방은 이 생활의 허무함을 느끼곤 한다.
담뱃불을 끈 홍서방은 봇짐을 지고 장바닥을 떠나 객주집에 허름한 방에 들어와 탁주를 들이킨다. 온 몸에 숨어있던 피로함이 짓누르기 시작한다. 허구헌 날 떠도는 역마살이 지독히 낀 장돌뱅이지만, 객주집에서 지내는 것도 점점 지겨워진다. 일부러 온 방의 불을 끄고는 생의 피곤함을 마음껏 느껴본다. 온 몸을 훝고 지나가는 아른함에 절로 눈이 감긴다. 그래. 이번 장은 재미가 좋았지. 그나마 요즘같이 힘든 때에 그나마 다행이라고 스스로 위안한다.
이런 순간마다 홍서방은 스스로 박차고 나온 안락함을 아쉬워하지만, 그 것도 운명이고, 그 운명이 자신의 편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아직 버리지 않았다. 어쩌면 홍서방은 청룡열차와 같은 생의 굴곡을 즐기고 있는 지도 모른다. 올라갈 때 뒤통수로 느껴지는 떨어질 것 같은 중력의 끌림과, 내려갈 때의 무중력 상태의 어지러움이 반복되는 생활이 무엇이 좋다고 선택했는 지 아직도 홍서방은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 것은 기대했던 해답이 생각보다 늦게 오는 실망감이기도 하고, 해답의 본질이 점점 바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혈기가 왕성했을 때 품었던 꿈과 야망은 이런 저런 어려움에 한풀 꺽인 채, 홍서방을 하늘 높은 곳에서 지상의 가까운 곳으로 끌어내렸다. 그도 이제는 천하를 호령하는 영웅이 되기보다는 소박한 생활인을 꿈꾼다. 시도 때도 없이 이 하늘 밑, 저 바닷가를 떠돌며 고독함에 젖은 위인의 그 드높던 기개는 세월의 풍파에 깎여서 사라지고 있다. 애초부터 그럴만한 그릇도 못되었으면서 언감생심 영웅이 되려했던 자의 초라함이여!
문득 막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낮에 걸려온 막내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전에 떠도는 데, 홍서방은 아직도 천리 밖에 있다.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아주 오래된 기분이다. 밤마다 컴퓨터를 켜놓고, 스크린에 올라있는 막내와 아내의 모습을 보며 잠들지만 여전히 그립기만하다. 홍서방의 피를 뜨겁게하던 모든 것들이 무의미해지고 있는 지금, 막내의 칭얼거리는 목소리들으며 조그만 손과 발을 조물락거리면서 잠들고 싶지만 그를 둘러싸고 있는 역마살은 지금 이 순간 그 행복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제 내일이면 그 행복을 맛볼 수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막내의 모습, 그나마 내일이면 그 기쁨을 다시 찾을 수 있다는 설레임에 이불에 드러눕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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