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똘뱅이의 애환
해는 중천에 떠있지만 한낮의 따가운 햇빛의 날카로움이 무디어지자, 우리의 장똘뱅이 홍서방은 짐을 싸기 시작하였다. 이제 한양장을 끝내고 대구장으로 갈 차비를 시작하였다.
짐을 대충 조랑말에 싣고, 먹이를 먹였다. 장똘뱅이 생활을 시작한지 어언 몇해건만 아직도 궁짜를 벗지못한 홍서방은 자신의 일부분처럼 아끼는 조랑말에게마저 훌륭한 먹이를 주지못하고, 그저 싸구려 풀을 먹이는 것이다. 남들이사 한양에서 대구를 가자면 날렵하게 생긴 말을 타고 가지만 장똘뱅이 신세를 면치 못한 홍서방이야 언제나 짐도 실을 수있고, 자기도 타고 갈 수 있는 힘좋은 조랑말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경치좋은 산천을 천천히 유람하듯 하는 것도 아닌 야반도주하듯이 언제나 저녁녁에나 출발을 한다.
이제는 이골이 날 법한 일이건만 매번 홍서방에게는 두렵고 힘든 일이다. 홍서방의 조랑말이야 짐도 싣고 주인마저 싣고 그저 한걸음 한걸음 온 힘으로 내딛으면서 힘들게 대구천리를 가지만, 돈많은 집주인을 만난 힘좋고 잘생긴 말들은 한걸음에 달려가는 길이다. 홍서방은 그런 말을 가져보는 것이 작은 소망이지만, 가까운 장래에 이루어 질 일은 아닌 성싶다.
가는 길에 원주장, 제천장, 단양장을 거쳐 안동장까지 보고 대구까지 갈려면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다해서 빨리 가야한다. 대구장에서 물건을 내리고 또 싣고 밤을 벗삼아 발품을 팔아야, 다음 날 한양장에서 보따리를 풀 수있기 때문이다. 이제 홍서방은 밤이 오히려 낮보다 푸근하게 느껴질 정도로 밤에 익숙하여졌다.
내려갈 때야 그래도 낮길이니까 별 생각없이 가지만 대구장을 마치고 다시 한양으로 올 때는 지척을 분간못하는 깜깜한 밤에 산길을 조랑말과 단 둘이 수많은 고개를 넘어야하는 어려움이 있다. 처음 장똘뱅이 일을 시작하면서 그믐날에 별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무가 울창한 첩첩산중의 무덤가를 지날 때면 처녀귀신이라도 나타날까 두려웠지만, 이제는 아줌마귀신이라도 같이 놀아주었으면 할 정도의 담력도 생겼다.
옛날에야 가다가 어두워지면 인심좋은 집의 사랑방이나 헛간을 얻어 이불피고 잘 수나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넉넉한 인심이 사라진지도 오래지만 밤길을 재촉하여 다음 날에는 한양장터에 판을 벌려야 하는 이즈음의 장똘뱅이들은 아스팔트깔린 길거리에 조랑말을 세워놓고는 이불도 없이 잠시 눈을 붙이고는 다시 길을 가야하는 고달픔이 있다. 그래서 홍서방은 옛적에 이 생활을 즐겼던 선배들이 부럽기만하다. 어느 선배는 여염집의 처녀와 눈이 맞아 하룻밤의 만리장성을 쌓고는, 늘그막에 생각지도 않게 장성한 아들을 만나기도하는 행운을 보았다지만 이제는 애초부터 기대도 못하는 먼 옛날의 전설일뿐이다. 낭만은 사라지고 오로지 더 많은 장터를 돌아다녀야만 선배들이 벌었던 돈냥푼이나 겨우 건질 수있게된 세상을 탓하지만 어쩌랴! 그래도 살아야만 하는 걸.
없는 집구석에 별난 능력도 없으면서 옛날 동화에 나오는 선녀들을 찜져먹을 예쁜 딸네미를 둘이나 낳고서도, 뭬가 모자란지 옥황상제 맏아들같이 훤칠하게 생겨먹은, 늦둥이마저 마흔이 넘게 보아 남들보다 더 많이, 오래동안 일해야 하는 홍서방은 오늘도 조간신문과 함께 집에 들어왔다.
자면서도 뒤척이는 처자식들을 보면서 낮에 있을 한양장에서는 더 잘팔아야지 하는 작심을 하고는 자리에 눕는다.
홍서방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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