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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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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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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예쁜 성보의 낑낑대는 소리에 눈을 뜨고 보니 아침 5시 반이 조금 넘었다.
바깥을 보니 하늘에 구름이 있기는 하지만, 비올 구름이 아닌 듯하여 우비없이 모자만 쓰고 가벼운 복장에 물통을 메고 산으로 나섰다. 밤새 비가 왔는 지 계곡에 흐르는 물이 깨끗하고 힘차게 흐르고, 공기는 선선하다.
산초입에 있는 정자에서는 왠 남자가 반쯤 비어있는 이민가방을 메고 누워있다.
아침에 산에 오르면 우선 머리 속이 선선해지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여느 때와 같이 산봉우리에 오르니 몇몇 사람이 앉아서 쉬고있다. 그 중에서 사방이 더 잘보여 내 자리라고 부르는 바위에 걸터앉아 아랫동네를 보았다. 짙은 구름 때문에 비온 뒤의 선명함이 없었다. 잠시 여기저기 보다보니 비가 한두방울 후두둑한다. 비가 올려나?
평일에는 보통 여기에서 올라온 길로 다시 내려갔지만, 어째 오늘은 좀더 있고 싶은 마음에 능선길을 걸어서 바위밑 샘터로 가는 길을 택하였다. 그런데 길을 걷기 시작하자마자 빗줄기가 약간 더 굵어졌다. 이러다 그치겠지. 바위에서 내려와 능선으로 들어섰다. 기다렸다는 듯이 비는 굵어지고 앞은 어두워졌다.
쏟아지는 비로부터 가려줄 거라고는 오직 모자하나. 온 몸으로 비를 맞아들여야 되었다. 가벼운 안마를 하듯이 여기저기 톡톡 건드리고는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눈을 들어 숲을 보니 빗줄기가 온 세상을 가득채웠다. 아니 이렇게 환상적일 수가. 그 장대 같은 빗속에 내가 있으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 소리와 느낌을 전달받고 있다니. 참, 오랜만에 느껴보는 비! 몇해전인가, 어느 망나니 동창녀석과 술에 곤죽이 되어 빗속에서 동네 창피하도록 고래고래 소리지르면서 노래를 한 이후로는 처음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다시 빗속에서 조용히, 아무 생각없이 서있다.
내가 왜 이러지? 아직 철이 덜 들었나? 전생이 물고기였나? 아님 개구리라도.
몸이 서서히 젖어가고 있다.
비는 점점 더 굵어져 가고, 때리는 비가 따끔함을 느끼게 한다.
이 빗속에서도 산행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니. 노부부가 우산을 같이 쓰고 지나간다. 나처럼 반바지에 모자를 쓰고 조깅을 한다. 그저 땅만 보고 열심히 걷는 아줌마가 지나간다. 그런데 나는 서있다. 아직은 비를 더 느끼고 싶어서.
모자를 벗었다. 얼굴로 떨어지는 개운한 느낌!
이제는 내려가야지.
돌사이로 흐르는 흙탕물이 내려가는 길을 안내한다. 안전을 걱정할 정도는 아니지만, 물이 제법 불었다. 전에 없던 개울이 생겨서 신발을 적셔야 하겠다. 양말마저 젖었다. 아무도 없는 골짜기의 장대비속을 홀로 가니 마치 아마존의 원시림에 던져져있는 기분이다. 바로 조금만 더 가면 1,000만이 모여 사는 도시에서 이런 적막감을 맛보다니.
거진 다 내려와서 정자에 도착하니 아까의 그 사내는 일어나서 비를 보고있었다. 아마도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는가보다. 반쯤 뉘어진 이민 가방이 그의 입장을 짐작케한다.
비가 떨어진다. ‘어쩌다 내가 이 지경까지 왔을까’,
빗방울이 바닥에 흩어진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하나?, 어떻게 무엇을 해야할 까?’
물이 모인다. ‘무엇이든 해야지, 그러다보면 다시 먹고 살 방도가 나오겠지’,
계곡으로 물이 흘러간다. ‘머지않아 다시 남들과 어울려 살 수 있을 거야!’
사내의 뒷모습을 보면서 하늘을 보니 비가 그치고 환해지기 시작한다.
오랜만에 비에 젖은 오늘 아침은 정말 상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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