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작성자

비밀번호

e-mail

제목

>> 사무실에서 6시에 나왔다. 동기회 장소가 면목동이니까 7호선을 타고 가다가 군자역에 있는 거래선을 잠시 들러서 상담을 하고 가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위성렬이 전화왔다. 자기를 모시고 가야하는 데 왜 혼자가냐고 호통이다. 박명수의 호통개그가 유행이라더니, 이 녀석도 벌써 배운 모양이다. 둘이 만나기에는 시간적인 차이가 있어서 먼저 가려고 지하철을 탔다. 아차산 역에 내려서 보니 저만치에 김종대가 총총히 서둘러가는 모습이 보인다. 부르기에는 약간 멀고, 사람많은 데서 큰 소리를 낸다는 것이 점잖은 체면에 할 일이 아니라 빠른 걸음으로 쫒아가려고 했지만, 큰 걸음으로 성큼성큼 가는 녀석을 따라잡기에는 내 다리가 너무 짧다. 
>> 
>> 예정시간보다 10분 늦었다. 그런데 벌써 홀은 어느 정도 차있었고, 문간에서 조희건, 강성환, 이종승이 반긴다. 참가비와 연회비를 내고 들어가니 13반의 좌석에는 아무도 없다. 언제나 그렇듯이 우리 반 녀석들은 항상 다른 반 자리에서 놀다가 나중에야 제 자리로 온다. 여기까지가 내 정신으로 본 동기회의 모습이다. 그 다음부터는 서로 이야기하고, 안부를 묻고, 술을 먹으면서 흥에 겨워 시간을 보냈다. 
>> 
>> 몇 달전인가 전화를 했지만 당시의 울적한 기분에 만남을 나중으로 미루었던 이재승에게는 오후에 전화를 해서 꼭 오라고 했지만, 막상 만나니 또 몇 마디 나누지도 못했다. 그러면서도 헤어질 때도 잘 가라는 말도 없이 얼떨결이 헤어졌다. 지척이 천리라고 지하철로 2-3정거장 떨어진 곳에 살면서도 그렇게 만나기가 어렵다. 돌이켜보니 꼭 재승이만이 아니라도 그렇다. 아무리 친한 친구도 1년에 대여섯번 보기가 어렵다. 전화도 한달에 한두번, 잊지 않을 정도로 간간히 한다. 저멀리 지구 밖에 저편에 산다거나, 차로 1-2시간 걸리는 거리에 사는 놈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모두들 서울에서 지하철로 30-40분이면 만날 거리에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물론 양평에서 사는 박철희나 울산에서 올라온 주남진도 있지만, 핸드폰으로 말미암아 단축된 거리감각은 그리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다. 
>> 
>> 평소에 자주 보지도 못하고, 전화를 자주 거는 것도 아니고, 그렇지만 1년 만에 우리는 또 다시 만났고, 마음 툭 터놓고 놀았다. 모두들 반가워하고, 술 잔을 권했다. 뭔가를 기대하지도 않고, 누군가를 경계할 필요없이 그냥 우리는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마치 학교를 졸업한 이후에 아주 자주 만난 사람들처럼, 그리고 그 사이에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 
>> 그리고 어느 순간에 우리들의 흥이 다 되어서가 아니라, 예식장이 문을 닫아야 할 시간이기 때문에 작별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자주 보자는 기약없는 말을 백악관 예식장 앞에서 수없이 하고는,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다. 내년 3월 6일 다시 모이기 전까지 여태 껏 각자 살아 왔듯이, 그렇게 각자 살아 갈다가, 또 우리는 그렇게 마시고 놀다 헤어질 것이다. 마치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 
>> 그런데 왜 우리는 이 모임에 나오고 있을 까?
>> 
>> 내가 동기들의 마지막 관에 못질을 할 때 쯤이면 알 수있을 까? 
>> 
>> =================================
>> 
>> 종대의 글을 보니 20% 부족하게 느꼈던 부분을 알겠다.
>> 
>> 이 모임에 나오는 이유에 대한 질문을 한 것은 이것 저것 복잡하게 따지지 말고, 나와야 한다는 의미로 쓴 것이었다.
>> 
>> 왜냐하면 경동이고, 36기라는 이유말고는 모두가 공감하는 특별한 이유가 없기 때문이지. 이유를 찾기에는 너무 단순하지.
>> 
>> 그리고 더 추가적인 이유를 찾는다면 우리는 졸업생 900여명 모두에게 다른 의미를 듣게 될 것이다. 그 수많은 이유중에서 모두가 공감하는 것을 찾자면 아마도 부처가 추구했던 '진리'에 버금가는 것일다. 
>> 
>> 우리가 이 모임에 나오는 이유를 깊이 파고들면 다른 모든 진리들과 마찬가지로 죽어도 알 수가 없다는 의미로 쓴 것이지.
>> 
>> 그런데 종대의 글을 읽고 보니, 내가 쓴 글이 정말 '왜 나와야 하는 지'에 대한 의문을 갖겠더라고. 그 것도 부정적인 의미로.
>> 
>> 미안하다. 친구들아!
>> 
>> 내가 하고자 했던 말은 '복잡한 세상이지만, 열심히 사는 대로 살다가 때가 되면 이 모임은 따지지 말고 늙어 죽을 때까지 나오자'는 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