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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졸업식 그.이.후.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눈덩이를 옷 속에 쑤셔 넣고, 밀가루를 씨우고 피하며, 이 친구 저 친구들을 부여잡고 추억의 장소를 찾아 사진 촬영을 해가며, 분주하고 어수선한 졸업식을 막 끝내고 정문을 향해 가는 내리막길이 유독 가파르게 느껴진다.
이제는 어쩌면 영원히 오지 못할 이 언덕 등굣길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어떻게 이 정상을 몇 분대에 매일 뛰어 올라 다녔나? 하는 생각에서 인지, 막연한 허전함과 아쉬움에서 인지 모르게 다리에 힘이 확 풀려, 후들거리며 내리막 학교의 정문을 지나고 있었다.
오래되고 낡아서 초라해 보이는 교문의 모습마냥, 흐연 밀가루가 듬섬듬성 교복 가에 군데군데 묻어 있었다.
졸업식에 으레 행하는 밀가루 세례를 받은 당사자가 아닌데도 옆에 있다고 덤으로 얻은 것이다.
7남매의 막내로 교복에 대한 추억과 아낌이 남달랐던 난, 소중하게 교복을 입었고 간직하고 싶었다. 하지만, 27년이 지난 지금은 없고,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아마도 후배들에게 고이 무려 주지 않았나 싶다.
우중충하지만 추억이 주저리주저리 많아 나서기가 아쉬웠던 수위실과 교문을 지나자마자
즉시, 빡빡 깍은 머리의 뚜껑인 모자를 벗어 하늘로 한 번 행가래를 치고, 상의 후크를 느슨하게 다 푸른 후, 교교 시절 내내 불리워졌던 사명당(사명대사)라는 별명에 걸맞지 않게, 아니 오늘 만큼은 그 전의 모든 것은 다 땅바닥위에 내려놓고, 자유로워지고 싶은 마음에 친구에게 담배 한 대를 얻어 물었다.
이것이 뭐 길래 다들 목숨 걸고, 냄새나는 화장실에 숨어서 재 맛도 못 느낄 정도의 길~다란 담배 불기둥을 새워가며, 손가락을 데어가며 연기를 빨아댔을까?
담뱃불을 댕기기 전에 코끝으로 훑어가며 생생한 솔담배의 향을 잠시 만끽한 후, 메케하면서도 쎄?!하고 시원한 뭔가가 목구멍 속을 넘어 까칠까칠 자극이 왔다.
콜록 이는 것이 수치같이 느껴져 깊이 심호흡을 하며, 뻥 뚫린 느낌을 확 토하고, 깊게 다시 한 번 심호흡을 했다.
핑~하니 어지럼 증상이 났고, 순간 약간 허공에 머무는 듯했다.
모두는 우르르 짱깨(중화요리-짜장면의 속칭)집으로 발길을 돌렸고, 이미 발 들여 놓을 틈이 없을 정도로 꽉 찬 짱깨집을 안쪽 깊숙이 비집고 들어선 우린 짜장면과 짬뽕, 야끼만두에 빽알을 시켰다.
뚜껑을 열고 작은 뚜껑에 빽알을 부은 후 라이터로 불을 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파아란 불꽃이 잔잔히 피어오르는 것이 그 동안의 오랜 학교생활에서의 해방감처럼 황홀하고 아름답게 보였다.
빈속에 톡 털어 넣은 투명한 액체의 느낌은 자극 그 자체였고, 지나고 보면 그 후로 마흔다섯이 되도록 계속해서 자극적인 물질을 섭취하기에 주저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 시간을 빌어 무모한 도전과 방종, 오만, 괴이한 삶을 같이 해온 나의 내부에 있는 오장육부에게 심심한 사죄와 더불어 주의를 할 것을 다짐해 본다. 육체의 건강과 간에게는 이미 늦었을지 몰라도 반성과 참회는 꼭 하고 넘어가고 싶다.>
밖의 연탄난로 위에서 보리차 냄새가 주전자 주둥이 사이로 연신 힘차게 솟구쳐 오르고 있었고, 왁자지껄 웅성이는 소리와 똑 같이 입은 검정색의 동복(겨울 교복)이 흐릿흐릿 눈동자 위에 겹쳐졌다...............
그 후 나의 삶은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살았는지 모를 정도로 숨 막히게 전국과 세계를 후비며 좌충우돌하면서 27년을 살아 왔고, 지금은 2남1녀와 모친을 모시고 학창시절에 살았던 동네에서 한 골목 뒤, 서울 동대문구 가장자리 작은 다가구 단독 주택에 살고 있으며, 아주 작고 보잘것없이 시들어져가는 제조업 회사의 대표로써, 국내 제조업의 몰락을 부활시킨다는 환상에 사로 잡혀, 계란으로 바위를 때리고 있으며, 계란으로 바위를 쳐서 바위를 깰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란이 깨지지 않도록 손아귀에 움켜쥐고 주먹으로 때리고 때려, 손 등에서는 피가 철철 흐르고, 눈에는 핏발이, 가슴에는 피멍이, 머리 속에 분노가, 먼 시야와 맑은 정신을 가린다.
한.참. 일할 나이에 사오정이라는 세대 교체론에 걸리고, 경기 침체에 걸리고, 중국에 걸려 넘어져 오지도 가지도 못하고 있다.
학창 시절 배웠던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을 믿고, 진인사 대천명(盡人事待天命)을 믿는다.
요사이 난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하고, 일일신(日日新)하며 우일신(又日新)하고, 일일청한 일일선(一日淸閑一日仙)하며 산다.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했지만 더욱 더 열심히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음에 부끄러워하고, 몇 번의 노력으로 안 된다고 포기 아닌 포기를 했던 과거의 삶에,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아 백련천마(百鍊千磨)를 하며,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하는 마음으로 오늘이 아닌 내일, 내가 아닌 후세를 위해서, 한 걸음 물러서 천년의 후일을 기약하고, 노력하고, 배우기를 게을리 하지 않아, 확실한 경동인의 참 모습과 10-20년 후에 후배들에게 참 길을 보여 주리라.
Never ever ever give up !!!
- 고교 동창생 코돌이와 짜루, 냄비, 넝마, 롱맨, 그리고 한참 힘들어 할 와다시에게 이 글을 쓴다. -             2005.08.20 봉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