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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돌뱅이의 애환(1)

우리의 장돌뱅이 홍서방은 대구장을 마치고 짐을 바리바리 쌓아 조랑말에 싣고, 심호흡을 크게 하고는 하늘을 보았다. 하늘은 이제 장을 마친 장돌뱅이들의 왁자한 주막집 불빛들에 환하였지만, 밤을 낮 삼아 한양 장으로 달려가야 하는 홍서방은 또 하루가 이제부터 시작인 셈이다.

밤새가야하는 긴 여정을 조랑말도 아는 듯이 크게 한번 울음을 울고는 발을 띠기 시작하였다.

대구 저자거리를 벗어나 조금 지나 다부 읍내가 나올 때까지는 그래도 주막이 있고, 마을이 있어 불빛이 끊이지 않지만, 다부만 지나면 그 때부터는 인간이 만든 불빛 보기가 힘들어진다. 이제부터는 홍서방과 조랑말만의 세계가 시작된다. 간간이 만나는 움직임이라야 번듯한 말을 타고 휭하니 달려가는 있어 보이는 양반이나, 어마어마한 짐을 싣고 조랑말을 위협하듯이 지나가는 마차꾼뿐이다.

장돌뱅이 생활에 이골이 난 홍서방이지만 앞으로 가야할 길의 힘듦을 조금이라도 덜고자 약간은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조랑말의 등에 올라탔다. 때때로 조랑말 위에서 피곤에 겨워 깜빡 잠들고는 하지만, 역시 이골이 난 조랑말은 길을 잃거나 주저앉는 일이 없다. 그저 말없이 주인의 피곤함을 가여이 여겨주는 조랑말이 고마울 뿐이다.

가여운 홍서방.

남들은 대구-한양 천리길에 구비구비 꼬여 있는 첩첩 산길에 몸서리를 치지만, 이제 홍서방은 나름대로의 즐거움을 찾아냈다. 피할 수없이, 그리고 쉼없이 계속되는 그 길 위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즐겁게 맞이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몇 가지를 찾아낸 것이다. 그리고 그는 대구에서 한양까지 밤새가는 길을 즐기기 시작하였다.

우선 홍서방은 어둠을 즐기기로 하였다. 다부읍내를 지내면 그야말로 인간의 문명을 휘황찬란하게 비치는 불빛이 사라진다. 그러면 남는 것은 칠흙같은 어둠뿐이다. 그 어둠이 홍서방의 몸을 휘감을 때, 온 몸에 가득히 퍼지는 희열을 느낀다. 그리고 그의 뇌는 마치 모든 그림이 지워진 새까만 먹지가 되버린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먹어버리고 아무 것도 보여주지 않는 그 어둠의 아늑함을 두려워하기 보다는 즐기기 시작한 후로 그는 밤의 여정을 기다리기 조차하였다.

그리고 그 어둠이 그에게 열어주는 새로운 세상의 경이로움을 찾았다. 태양이 훤하게 비치는 낮에야 한눈에도 몇리길을 볼 수가 있지만, 어둠속에는 한발 한발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한발짝 앞으로 가면 보이지 않던 풀이 나타나고, 나무가 나타나고 웅덩이가 나타나고………. 달빛은 또 새로운 물체를 만들어낸다. 나무가 사람이 되어 움직이고, 돌이 부처가 되고, 산은 누워있는 짐승의 얼굴로 변하기도 한다. 홍서방은 대구에서 한양에 올 때까지 단 한번도 같은 세상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 세상에선 그를 괴롭히는 형상은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무심한 모습으로 그에게 보여질 뿐이다.

그리고 그는 별을 보는 즐거움을 찾았다. 한양에서는 볼 수없는 그 별들. 마치 이 세상에서 없어져 버린 줄만 알았던 별들. 어릴 적 방학때면 할머니의 무릎에서 보았던 별, 별똥별, 은하수. 이 세상의 불빛이 사라지자 그 별들이 다시 부활하였다. 나침반의 발견으로 용도조차 폐기되버린 북극성을 그는 찾았다. 그가 아는 별자리라곤 고작 북두칠성뿐이고, 북극성은 그 북두칠성속에 있기에 그나마 찾을 수가 있었지만, ……….. 아직도 밤하늘이 까맣지않고 회색 별빛으로 칠해져있는 그 밤하늘을 그는 좋아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를 즐겁게 하는 것은 그 어둠에 묻혀있는 세상에서 그 즐거움들을 즐기다보면 어느 새 한양이 가까워져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기야 한양이 그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양 언저리에 그의 오두막이 있기 때문이다. 어렵게 마련한 그 오두막조차 지키지 못하고 빼앗길까봐 노심초사하기를 수삼년. 이나마 온전하게 지키고 있음을 홍서방은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그리고 그 초라한 오두막에는 그가 사랑하고 보살펴 주어야 할 가족이 있기에 그는 밤을 휘저으면서 어서어서 한양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한발 한발 그 작은 쉼터로 가까워짐이야말로 홍서방이 갖는 이 밤 최고의 즐거움이다.

행복한 홍서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