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재화

2004년 1월 1일 새벽 5시 40분 홍서방은 자리에서 일어나 사진기를 챙기고 집을 나섰다. 세상은 가로등에서 한발자국만 벗어나도 앞을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깜깜하다. 어떻게 산 꼭대기까지 혼자 걸어가나하고 은근히 겁이 났지만, 산속으로 들어갔다. 지난 한해는 나라 전체로 보면 상당히 어려웠다고는 하지만, 홍서방은 그래도 비교적 남들에 비하여 고난이 적었다고 할 수있다. 허구헌날 밤을 새가면서 길동무도 없이 혼자서 떠돌아다니는 장돌뱅이 생활이지만, 험한 꼴 당하지 않고 금년 한해 무사히 가족과 딸린 식구들 뒷바라지한게 그저 자랑스러울 뿐이다. 그렇다고 부평초같은 장돌뱅이의 형편이라는 것이 굳은 땅에 말뚝을 박혀있는 게 아니라, 여기서 긁어 모은 부스러기를 저기서 펼쳐놓고 파는 생활이라 언제나 불안하다. 금년이 좋았다고 내년이 좋으리라는 보장도 없고, 행여나 몸뚱아리가 병이라도 나면 당장 온 식구들 끼니 걱정해야 하기 때문에 그저 무작정 열심히 할 수도 없다. 있는 힘껏 열심히 생각하면서 일하고, 운을 기대해야 하는 홍서방으로서는 새해 첫날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하늘님께서 새해에는 작년과 같게만 해달라고 복을 빌고 싶을 따름이다. 막상 산에 들어서는 몇몇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서 산정상을 향하여 가고 있었다. 역시 세상 사람들 마음은 틀리지 않는군.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다. 그런데 정상으로 향한 길로 들어서자 이제는 사람들에게 떠밀려서 올라가는 형국이 되었다. 아니 사람들이 이렇게도 하늘에 빌 소원들이 많은가. 밀려밀려 올라가면서 제 시간에 올라가야 뜨는 해를 볼 수있다는 급한 마음에 힘들지만 부지런히 정상에 올라가니 발디딜 틈도 없다. 겨우 사진기를 설치할 만한 틈새를 잡아놓고, 해가 뜰만한 위치에 렌즈를 향해놓았다. 겨우 주위를 돌아보니 모두들 들뜬 분위기에 왁자하다. 물한모금을 먹고서 기다리다보니 어째 불안하다. 구름이 많다. 아니나 다를 까, 분명히 해뜰 시간이 지났음에도 세상은 여전히 어둡다. 실망스런 투덜거림들. 홍서방도 적잖이 실망했다. 주섬주섬 사진기를 챙기고는 내려갈 준비를 하였다. 음식을 준비한 패거리들은 그래도 즐겁게 서로 새해 인사를 하면서 웃는 얼굴로 서로를 축하하고 있다. 갑자기 추워지기 시작해서 옷을 덧입고는 하산을 재촉했다. 취미랍시고 사진을 찍겠다고 사진기를 사서 처음으로 산에 올라오는 길이라 배낭도 없이 그저 가방에다 삼각대를 둘러매고 가니 모두들 한마디하고 지나간다. ‘아저씨 사진을 못찍어서 어떻해요?’ 아직도 세상에는 이렇게 남 걱정해주는 사람이 많다는 걸 확인하니 오늘 헛걸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중턱까지 내려오는 어떤 아줌마가 “해떳다!”하고 소리를 친다. 고개를 들어보니 두꺼운 구름사이로 해가 얼핏 얼굴을 내밀었다. 얼른 사진기를 꺼내서 무턱대고 찍었다. 셔터를 두어번 눌렀을 까. 다시 해는 구름사이로 들어가고 세상은 다시 어두어졌다. 그래 난 역시 운이 좋은 놈이야! 해를 보았으니까. 새해에는 틀림없이 일이 잘 풀리겠지! 그리고 이 사진을 보는 모든 사람에게도 홍서방의 행운이 조금씩 돌아가기를 바라면서, 산을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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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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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일수